전과 22범 김일곤의 ‘트렁크 살인사건’ 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살생부)

전과 22범 김일곤의 ‘트렁크 살인사건’ 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살생부)

이하 연합뉴스

김일곤은 1967년 경북 경주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학업에는 뜻이 없었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뛰쳐나왔고, 부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중국 음식 배달 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다 범죄의 늪에 빠져들면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고 한다. 어느새 전과가 쌓여 22범이나 됐다. 교도소에서 보낸 세월이 무려 18년이다. 이 기간 동안 면회기록은 ‘0’이다. 가족을 비롯해 누구 하나 찾지 않았다. 출소 후에는 고시원에서 지냈다. 월세 낼 돈을 구하지 못하면 그대로 달아나 길거리 생활을 이어갔다.

노숙을 할 땐 일용직 일자리를 소개받기 쉬운 강남구와 성동구 일대에서 주로 지내곤 했다. 2013년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김씨는 이때 척추를 다쳐 수술을 받고 장애판정(6급)을 받았다. 그는 “나는 의료사고 피해자”라며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다. 김일곤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자 척수 장애 6급 장애인으로 월 3만원의 장애수당과 66만원의 복지수당을 국가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7월에는 서울 구로구 대림동의 한 재래시장에 가게를 열었다. 주변 상인들과는 담을 쌓고 지냈고, 가게 창문은 검은색 테이프로 다 막아서 안을 볼 수 없게 했다. 결국 5개월 만에 폐업했다. 2015년 5월2일 김일곤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먹자골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승용차 운전자 A씨(20대 중반)와 접촉사고로 시비가 붙었다. 말다툼은 폭행으로 이어졌다. 쌍방폭행이 벌어졌으나 김씨는 폭행가해자가 돼 벌금 50만원 처분을 받았고 A씨는 무혐의 처리가 됐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 김씨는 상대방이 무혐의가 되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6월초부터 A씨가 일하는 노래방 주변으로 7차례나 찾아가 “벌금을 대신 내라”고 요구했다. 이에 A씨는 김씨와 시비가 붙을 때마다 욕설 등으로 맞서거나 무시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A씨가 강하게 나오면 겁을 먹고 도망쳤다. 8월 초에는 A씨의 노래방 앞에 칼을 들고 찾아가 “이제부터 너나 나나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A씨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보복을 결심하고 ‘살인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는 A씨를 유인하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를 가장할 젊은 여성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 노래방에서 일하려는 도우미 여성이 연락하면 나오리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8월24일 김씨는 본격적으로 범행에 나선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대형마트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미리 준비한 흉기를 소지했다. 여성 전용 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한 여성이 주차된 차량에 탑승하려고 하자 재빨리 그 옆으로 다가갔다. 운전석 문을 열 찰나 김씨는 흉기를 꺼내들고 B씨(여‧30)를 위협했다. “빨리 옆 자리로 가라,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거다”라고 했다.

김일곤은 B씨를 조수석에 태우고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이 주차장 밖을 벗어나자 B씨는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고 조수석 문을 열고 승용차 밖으로 뛰어내려 탈출했다. 당황한 김씨는 그대로 차를 몰고 도망갔다. 김씨는 충남 천안과 아산으로 내려와 이 일대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9월9일 오후 김씨는 아산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 있다가 장을 보고 귀가하던 주부 주아무개씨(여‧35)를 차량 째 납치했다.

운전석에 탄 김일곤은 주씨가 도망가지 못하게 안전벨트를 채우고 차량 잠금장치를 한 다음, 칼을 겨눈 상태로 차량을 운전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주씨는 탈출을 모색하며 “소변이 급하니 차를 세워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천안으로 진입해 두정동의 한적한 골목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주씨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붙잡혀 다시 승용차로 잡혀왔다.

주씨는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창문을 두드리며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주씨의 절박한 모습을 보고 도우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김일곤을 더 자극했다. 결국 김씨는 국도변에 차량을 세우고 주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김씨는 시신을 트렁크에 넣고 차를 운전해 서울에 올라왔다가 강원도로 이동했다. 9월10일 속초를 거쳐 동해의 한적한 공터에 다다르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트렁크를 열어 시신을 훼손했다.

숨진 주씨의 목과 복부를 찌르고 음부를 도려냈다. 이미 숨진 시신을 이처럼 훼손한 것은 주씨가 사망하면서 자신의 보복에 차질이 생겼다는 분풀이 때문이다. 그런 뒤 다시 부산 광안리로 향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동해 다른 제네시스 차량의 앞 번호판을 훔쳐 바꿔 달고서 주로 국도를 이용해 서울로 돌아왔다.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김씨는 주로 주씨의 시신이 실린 차 안에서 잠들었다.

9월11일 서울로 올라온 김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성동구 고시원에서 짐을 챙겨서 나와 다시 차에 탔다. 성동구 황학로터리 인근에서 접촉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 이어 홍익동으로 이동해 한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증거인멸을 위해 주씨의 시신이 든 차량에 라이터 기름을 뿌린 후 불을 질렀다. 김씨는 그대로 도망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승용차 안에서 불에 탄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부탄가스통 3개가 놓여 있었다. 경찰은 승용차가 주차된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힌 남성 중 검은색 정장을 입은 김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추적에 나섰다. 피해자의 차량에서 김씨의 지문과 DNA도 검출됐다. 경찰은 9월15일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현상금 1천만 원을 걸었다.

김씨는 도주하는 동안 선불폰을 사용하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고, 변복을 했다. 하남 등지로 도망 다니던 김씨는 9월16일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인 9월17일 오전 10시쯤 김씨는 성동구 성수동의 한 동물병원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40대 여성 간호사를 위협했다. 그는 “개를 안락사 시키는 약을 달라”고 하는가 하면 “나를 개를 안락사 시키듯 죽여달라”고도 말했다. 더 이상의 도주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막다른 선택을 하려던 것이다.

그러자 병원에 함께 있던 수의사와 간호사는 진료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하면서 김씨의 도주행각도 막을 내렸다. 경찰은 오전 10시54분쯤 병원에서 1km 떨어진 성동세무서 건너편 인도에서 김씨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8일만이다. 그는 체포 과정에서 칼을 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몸에는 독일제 쌍둥이칼 두 자루와 커터칼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는 성동경찰서에 압송된 후 “난 잘못한 게 없다. 잘못한 게 없어. 난”이라고 소리쳤다. 이어 “난 더 살아야 돼. 난 잘못한 게 없고, 난 더 살아야 된다”며 발악했다. 동물병원에 가서는 “안락사시켜 달라”고 해놓고는 경찰과 맞닥트리자 삶의 의지를 불태운 이중성을 보였다. 김일곤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가로 15㎝, 세로 20㎝의 옅은 노란색 메모지 2장이 나왔다. 여기에는 경찰관, 판사, 의사, 우체국 여직원 등 신분이 다양한 사람들 28명의 이름과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경찰 탐문 결과 해당 인물이나 기관들은 모두 김일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했던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돈을 갚지 않은 식당 여사장, 자신을 조사했던 형사나 당시 참고인, 재판장 등이 그들이다. 특정된 사람도 있지만 ‘1992년 절도 당시 ○○경찰서 형사들’처럼 모호하게 적혀 있기도 하다. 이 명단에 대해 김일곤은 “하나씩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일곤이 만든 ‘살생부’였다. 김씨의 내면에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가 있다. 실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PCL-R)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33점이 나왔다. 25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그를 면담한 범죄행동분석관(프로파일러)은 “타인의 고통에 냉담하고 거리낌 없이 살해하는 사이코패스”라며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성향까지 있어 A씨에게 훼손된 자존감을 찾기 위해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잔혹하게 화풀이했다”고 밝혔다.

이하 기사와무관한사진/클립아트코리아

김일곤은 강도살인·사체손괴·일반자동차방화·특수강도 미수 등 10여 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수사와 재판과정 내내 불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또 변호인이나 전문심리위원과의 면담을 모두 거부한 채 법정 출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김씨에게 “아무 잘못도 없는 피해자를 살해하고도 수사와 재판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울러 30년간 전자위치추적장치(전자발찌) 부착도 함께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을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시내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범행해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금까지 사형이 확정된 여러 사건을 검토해봤을 때 계획적인 범행이었거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김씨 범행보다 더 무겁다고 볼 만한 측면들이 있었다”며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검찰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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